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 정책과 뒤늦게 뛰어든 신흥제국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삼국 협상과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삼국 동맹이 형성되고 이 두 동맹이 대립이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19세기 후반 이래 유럽 열강은 제국주의 팽창은 곳곳에서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통일 이후 유럽의 현상 유지와 프랑스의 고립화를 추구하였고,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퇴진한 이후 독일은 공격적인 세계 정책을 펼쳤다. 이에 대응하고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3국 협상을 체결함으로써 유럽은 3국 동맹과 3국 협상 체제로 나뉘어 긴장 상채를 유지하였다.
독일과 영국은 3B 정책과 3C정책이라는 팽창 정책으로 대립하였고, 북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 사건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갈등하였다, 발칸반도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범 게르만주의와 러시아와 슬라브계 국가들의 범슬라브주의가 대립하였다. 또한 발칸반도의 여러 민족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칸 전쟁이 일어나 대립과 충돌이 심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19세의 세르비아 민족주의 혁명가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연이어 동맹국과 연합국가들이 전쟁에 가담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경과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신속한 승리를 예상하고 벨기에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저지되자, 서부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져 참호를 만들고 서로 대치하는 참호전이 전개되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이 빠르게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국내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고 전선에서 이탈하였다.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국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려 연합국 측에 가담하였다. 미국은 외형상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치고 비밀리에 멕시코와 동맹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자, 1947년에 연합국 진영으로 참전하였다, 이로써 전쟁의 승기는 연합국 측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1918년에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마지막 대공세를 펼쳤으나 실패하였다. 곧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이 항복하였고, 독일 해군들 사이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후 독일 공화국 정부가 연합국과 휴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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